고현정 개인전《지난 밤에 본 그 개는 어디로 갔나》
서문: 변용하는 신체들
김민관(기획자)
좀처럼 나에게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인상, 이따금 솟아나며 일련의 이미지 질서로 구분되는 흔적, 나아가 나를 송두리째 포획하는 웅덩이 같은 이미지. 기억은 이미지보다는 과거와의 매듭이 조금 더 강화된 질서로 보인다. 현재와의 연결에 의해 재생산되기보다 나를 비추는 어떤 내재적 아우라의 미디엄인 셈이다. 이러한 기억을 재생하며 재현하는 것은 작가의 과제로 분류된다. 이러한 과제는 회화의 근본적인 원리가 될 수 있을까. 곧 표현방식의 절대적인 기원과 만나는 지점을 찾을 수 있을까.
작가가 그린 이미지는 어떤 단편들에 근거한다. 기억을 이미지로 현동화하는 건 하나의 세계관에서 파생되는 연결-종합 이미지의 계열을 이루지 않는다. 그것은 만나지 않는 세계들의 일부를 엿보는 불안(정)한 더듬기의 방식에 의거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아우라에 대한 표현이지만, 기억을 더듬어 꿰매는 봉합의 경계를 드러낸다. 그것은 어떤 생명체로 분류되기 전에 하나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회화에서 오브제의 세계로 건너가며 한층 부각된다. 형상은 마치 회화 안에서 배경과 형상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결합되어 있는 것과도 같이, 대기 속에서 바깥을 향한다, 또는 안으로 말려 들어간다.
어슴푸레함의 컨텍스트가 더 강화되는 게 밤이다. 생명의 진동이 강하게 욱신거리는 것 역시 밤이다. 생명의 원초적 냄새가 심각하게 맡아지는 건 인간이 아닌 동물이다. 그것은 그 울음에서 세계의 진동으로 나아간다. 찬연하고 처연한 밤의 풍경은 스미고 치켜뜨는 표층으로 나타난다. 작가의 물음, 곧 ‘지난밤에 본 그 개는 어디로 갔을까’는 일차적으로 지난 밤 등장한 개와 지난밤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빈 풍경 아래 가능해진다. 이 역설적 물음에서 지난밤에 본 개는 지난밤에 인상으로 현재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결코 부재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난밤에 본 개가 지금 여기와의 간격 속에 자리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개는 하나의 (기억의) 세계를 구성한다. 하지만, 나아가 (가상의) 세계는 개로 변용된다. 여기에 어떤 독특한 진리가 수여된다. 거기에는 밤 아래 흐릿하면서도 뚜렷한 식별을 경유한 개와 세계의 구분 불가능성이 아닌, 개의 모든 것으로의 변용 가능성이 전제된다. 곧 ‘지난 밤에 본 그 개는 어디로 갔을까’는 개의 무한한 확장이라는 하나의 지평에 대한 물음이 된다. 작가에게 개는 변신 기계이고 세계에 관한 생성 프로세스의 일부다. 곧 개는 작가에게 기억에 대한 하나의 메타포이고, 일련의 기억이 나아가는 하나의 촉매이다. 개는 세계가 되어 간다. 그리고 세계는 개에 의해 세계가 되어 간다. “개는 새가 되고 나비가 되고 땅이 되고 바다가 되었다가 해가 지면 밤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밤의 관찰자”**가 밤을 배회한다. 밤을 완성하는 건 생명체들이 아니라 그것과의 관계에서 비가시적 범주를 구획하는 낯선 이이다. 이 시선 속에 포착된 생명들, 인상들, 기억들은 감각의 포착과 시간의 주어짐 아래 교정되고 증폭되고 사그라지고 그렇게 생성된다. 이러한 생성은 회화에서 어떤 세계에 대한 막연한 접근과 작가의 신체 기술 사이에서, 대상에 관한 재현과 작가의 고유한 스타일 사이의 혼동과 그 둘의 구분 없음을 동시에 구성한다. 그리고 여기서 회화는 기억의 생성 과정과 겹친다. 기억에 대한 능동적인 접근이자 역량으로서 회화는 존재한다.
*작가 노트의 마지막 문장.
* *작가가 고안한 단어.